공학도의 블로그인데도 불구하고 요즘 광해군과 소현세자 이야기를 올리고 있었네요. 광해군이든 소현세자든 이야기하다보면 꼭 임진왜란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의문이 들더군요. 임진왜란 초기. 조선은 왜 그리도 허무하게 무너졌는가? 하는 의문이지요. 초등학교때 단순히 주입식으로 배웠던 소총때문일까? 설마... 제가 좋아하는 소설 "은하영웅전설"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스페인과 잉카제국의 관계 정도를 빼고나면 무기의 차이가 전쟁의 승패를 절정지었던 적은 없고,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전략과 전술이 승패를 결정지었다. 그 말을 떠올리면 몇몇 자료를 조사했습니다. 뭐 언제나 그렇듯 이 글은 그 자료의 조사 결과를 그저 나열하는 수준의 글입니다.^^.




   문제. 임진왜란 초기. 조선은 왜 그리도 허무하게 무너졌나 ?!  
 


위 그림을 보면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의 기세를 알 수 있습니다. 4월14일을 시작으로 한강방어진을 돌파하는 날짜가 5월 2일입니다. 부산에 사는 선비가 한양에 과거보러가는 여정처럼 그저 걸어간듯한 저 날짜가 도대체 의문입니다. 조선은 방위라는 개념조차 없었나? 하는 의문 마저 듭니다.



   답변 1. 일본은 얼마나 강력했는가 ?!  
 


일단 처음 이야기 한 것 처럼 저렇게 전격 작전으로 한마디로 표현해서 싹 쓸어버릴정도라면 일본은 얼마나 강력했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일본이 임진왜란 초반 투입한 군사력은 낮게 잡아도 16만명을 한방에 투입합니다. 16만명...  그런데 군사력에서 숫자도 중요하겠지만, 이 병사의 질도 따져봐야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 세계적으로 15만명 이상의 병사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 자체가 얼마 없었습니다. 특히 동북아시아의 국가는 명나라와일본이라고 해 두어야겠네요. 그런데 국운이 기울었던 명과는 달리 일본의 당시 16만명은 얼마전까지 실전 전투를 치뤄낸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장악한 임진왜란 직전. 전국시대를 마감하면서 남은 부산물로 이 막대한 군사력이 남은 것입니다. 혼란한 국내를 전쟁으로 통합한 경우 예외없이 이와같은 군사력이 남게 됩니다. 이 군사력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통일을 이뤄낸 지배자의 숙제가 되는데요. 실제 제정로마를 탄생시킨 아우구스투스 초대황제는 국가의 재정상태를 가늠해서 아슬아슬한 경계선까지 군사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30년이상의 시간을 공들여 작업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런 노력이 왜 필요한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재정입니다. 어마어마한 군사력을 그대로 유지하기엔 돈이 많이 들거든요. 그리고 또 다른 반란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통상 통일이라는 원대한 작업을 끝낸 지배자들이 또한 그 다음으로 수행하는 대외적인 정복사업도 이런 이유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요.

하여간 당시 일본군은 전국시대의 통일전쟁을 치루면서 어마어마한 실전경험을 가지고 있는 정예병사들이라는 것이지요. 또 하나는 그들의 지휘관들이 전국시대 각 성의 성주들로서 자신이 지휘하는 병사들과 유대관계도 높고, 그들 역시도 실전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력한 군사라 하더라도 원정입니다. 단지 그들의 전투 의욕이 높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전쟁에 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개전 20일만에 수도를 점령당한 것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임진왜란.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소총입니다. 이 무기 때문에 육전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대신 수전에서는 대포로 이길 수 있었다는 교육... 저도 어릴때 받았던 교육입니다. 그럼 정말 소총 때문일까요. 소총이 유용한 무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소총이 있고 없고의 차이도 분명 나타났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판단해야하는 것은 그 전쟁터 자체를 놓고 보면 곤란합니다. 전쟁의 전후 사정을 다 알아야하는 것이지요.

소총의 존재유무는 조선도 일찍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들 수 있는 기술도 있었다고 봐야할 듯합니다. 그러나 조선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소총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무기의 선택이 아니라 전략의 선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답변 2. 조선의 방위전략은 무엇이었나 ?!  
 

이제, 조선의 방위력을 한번 알아봐야할 것입니다.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의 전체 군인수는 14만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공격하러 가는것이 아니라 수비를 하는 것이므로 실제 상시 수비군의 숫자를 알아야합니다. 위 표에 있듯이 정예군은 2만 3천여명으로 나타납니다. 이중 순수 군사는 8천명이고, 나머지는 군사를 보충하는 보충병입니다. 이나마도 8천이 항상 있었던 것이 아니라 2천명씩 교대로 국방을 지켰다고 합니다. 즉, 각 지역 고을이나 성의 수비가 아니라 치안을 담당하던 군사를 빼고나면 가용 병력은 일단 2천명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나마 북방 국경에 배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역별 치안 유지군을 제외하면 딱 8천명이네요. 즉, 8천대 16만의 대결이었던 겁니다. 그러면 이 황당한 결과는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요. 일단 역시 돈이 문제입니다. 당시 조선은 양민의 수는 줄어들고, 지배계층은 점점 부자가 되고, 결론적으로 세금을 내는 양민이 줄어들어 국가의 재정이 또한 빈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타계할려는 각종 노력이 많이 있었지만, 항상 실패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국가 재정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군사력의 약화로 돌아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나마 북방으로 군사력이 몰려있었던 것은 일단 여진족이라는 오랑캐가 걸어서(실제로는 말타고) 국경을 쉽게 넘으니 그쪽에 배치 시켜 주었던 것이지요. 그럼 남쪽의 왜구는? 하시겠지만, 조선 초기 왜구의 진원지인 대마도를 복속시킨것도 있고, 대마도주와의 협상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시엔 왜구는 소수의 인원을 이용한 게릴라 식의 해적질이어서 속수무책이었다고 봐도 될것입니다.

본래 조선의 방위체게는 진관법이었습니다.


각 거점별로 군사력을 가지고, 그 군사력에 대한 책임자를 임명해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한 거점이 무너져도 다음 거점이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인데요. 문제는 이 진관법은 살짝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국가 재정이 문제를 가지기 시작한 이후, 위 진관법은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각 거점이 각개격파로 무너져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지요. 당시 지배층이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조선은 위 진관법을 제승방략 체제로 변경합니다.


제승방략 체제라는 것은 문제가 생기면 각 거점의 군사가 미리 지정된 장소로 모이고, 그 동안 중앙에서 지휘관을 파견하는 형태입니다. 그렇게 해서 규모가 큰 적에 대처하는 방식입니다. 조선은 육군은 위의 제승방략의 방법을 체택합니다. 그러나 수군은 숙련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진관법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이 제승방략 체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이전의 왜구에게는 그래도 잘 동작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토요토미 히데요시 이후의 일본 정국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선을 알 지 못햇습니다. 즉 위 제승방략 체제에 헛점이 발생한 것입니다.


즉, 경상도 상주지역인데요. 한양에서 지휘관을 파견하기 전 삼도의 군사는 이미 상주지역에 모여있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지휘관이 도착하기전에 일본군이 먼저 도착한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남쪽의 군사력은 괴멸되 버립니다. 이때문에 조선은 계속 한발짝 늦은 대책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전군의 괴멸로 이어져버립니다.


   문제는 국제정세를 판단하려는 노력과 올바른 전략... !  
 

무기의 차이는 전술의 차이를 불러올지는 몰라도 무기때문에 ... 라고 말하기엔 부족합니다. 결국 전략인데요. 전략적인 안목으로 무기를 개발하고 병사를 훈련하고, 혹은 외교도 하고, 어떨땐 정복전쟁으로 선공을 나서기도 하는 것인데요. 당시 조선은 일본의 정세를 판단하는데 실패합니다. 


히데요시는 조선의 선조에게 자신의 휘하로 들어와서 같이 명을 치자고 합니다. 이 내용을 당시 대마도주가 왕에게 전달하는데요. 조선과의 무역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대마도주는 조선에 이 사실을 알릴때, 내용을 왜곡시킵니다. 일본의 통치자가 바뀌었으니 인사나 한번 하는 것이 어떠냐? 히데요시는 명나라로 가려 하는데 그 길을 좀 열어달라... 정도의 수준으로 바꿔 이야기해버립니다. 그러나 조선은 대마도주를 통한 정보입수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저 정도로 조선의 눈치를 보는 것이 대마도주라는 위치였다면, 분명 은밀히 대마도주에게 접촉하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쟁 의지를 읽고도 남았을텐데 말이지요. 어쩌면 적절한 외교적 협상을 통해 대마도주를 회유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분명 군사적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을 문제입니다. 그러나 조선은 마치 지금으로 따지면...

잉? 일본이 중국이랑 전쟁을?
뭐? 일본이 중국을 먹겠다고?
이런 미친....

이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냥 그 이전까지의 습관에 의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실제로 조선 방위전략의 헛점을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분명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쟁과 외교를 통해 한 국가를 통일한 사람입니다. 분명 사전에 정탐을 했을 것이 분명하고 또한 그로부터 필승의 전략을 수립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조선 방위전략의 헛점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또한, 16만명이나 되는 병력이 전쟁을 준비하고, 숨길 생각도 없이 명으로 가는 길을 열어라고 요구하는 적에 대해, 조선은 너무 준비가 없었습니다. 국가비상사태라도 선언하고 최소한 방위총책임자라도 선정해서 부산이든 군사거점이었던 상주든 배치시키고, 적정을 탐문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분명 전략적 판단의 실수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제 생각에는 조선이 임진왜란 초기에 그리도 허무하게 밀린 것은 당시 통치자들의 잘못된 국제 정세 판단으로 인한 전략의 실패입니다. 물론 일본군도 임진왜란 중반 전략의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원정 실패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혹시 시간이 허락하면 그것도 한번 포스팅하고 싶네요.)

단순한 의문으로 시작한 이 포스팅을 위해 조사해야할 것들이 많더군요. 제가 생각한 결론을 이야기하기 위해 언급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특히 무기의 부분인데요. 이는 따로 이야기해야할 듯해서요.(시간이...ㅜ.ㅜ) 이 글을 위한 자료는 모두 요근래 즐겨보는 KSB 역사스페셜과 저의 즐겨찾기 1위인 위키디피아백과사전과 여러 블로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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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미예 2010/02/22 05:28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 PinkWink 2010/02/22 05:39

      다시 읽어보니.. 하고싶은말을 잘 못하고 이것저것 많이 이야기 했네요.... 그래도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바람처럼~ 2010/02/22 11:44

    정말 흥미로운 글이네요
    저도 역사적인 내용을 특히나 좋아하거든요
    삼국시대도 참 재미있었고요
    저도 어렸을 때 단지 소총과같은 발달된 무기탓에 졌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상세한 글을 보니... 수긍이 가네요
    이번 글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

    • PinkWink 2010/02/22 13:54

      재미있었다니.. 다행입니다.
      점점 제가 제 블로그 목적인 공학과는 관계없는 글만 계속 올려요..ㅎㅎ^^

  • 음. 2010/02/23 09:38

    무기의 위력만 따진다면 일본의 조총보다 조선의 각궁과 화포들이 앞서 있었지요... 다음에 무기 부분에 관해 따로 이야기 해주신다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PinkWink 2010/02/23 13:32

      헉.. 기다리시면 안되요...
      기약이 없다는....ㅎㅎㅎ^^

  • kid 2010/02/23 15:00

    잘 읽고 갑니다. ^^
    뭐.. 국사를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도 참 답답한 대목이긴 합니다. ^^

    에고고고고...

    • PinkWink 2010/02/23 15:38

      아참... kid님은 국사를 가르치는 분이셨다는...ㅎㅎ
      고수님앞에서 주름을 잡아버린... ㅎㅎ.....ㅜ.ㅜ

  • 분홍별장미 2010/02/23 15:44

    8000 vs 16만 이면 당연히 무너질수 밖에 없을것 같네요. 일본쪽에서
    우리나라 군사력과 헛점 정보를 확실히 알고 쳤으니..
    지금도 아마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북한정세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요거 몇년전에 다 공부한건데 ㅠ.ㅠ 읽을수록 꼬이고 꼬이네요.

    • PinkWink 2010/02/23 16:06

      헉... 몇년전에 하셨다구요? 우와.. 대단하십니다. 음.. 왜 전 이전엔 이와같은 의문을 가지지 못했을까요....ㅜ.ㅜ

  • casablanca 2010/02/24 07:11

    역시 수학보다는 역사가 더욱 흥미로운건 어쩔수 없네요.ㅎㅎ
    아주 역사적인 흐름을 분석적으로 명쾌하게 정리를 잘하셔서 항상 관심있게 보게되네요.

    • PinkWink 2010/02/24 12:56

      ^^ 여기저기 가져온 자료를 나열했을 뿐입니다...^^

  • 토실토실 2010/02/27 10:23

    오늘 처음 블로그에 방문했는데^^ 너무너무 역사에 관한글이 재밌더군요^^

    국사뿐 아니라 세계사를 보시는 안목도 높으신거 같아요^^..

    좋은글 감사드리구요^^ 개인 적으로 정화의 해외원정에 대해 글을 보고 싶습니다^^

    동양 역사상 최고규모의 대규모 해외원정

    혹설에 아메리카땅을 처음 밟은건 콜롬버스가 아니고 정화라는 말이 있는데요^^

    나중에 여유가 되시면^^ 그글을 써주셧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PinkWink 2010/02/28 18:24

      ㅎㅎ 숙젠가요???^^
      한번 또 재미삼아 공부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합니다.^^

  • Devjin 2010/03/03 15:29

    요즘 시간때우기에 좋은 도움을 주던 pinkwink님 글을 다 읽어버렸네요..ㅠㅠ
    아 그리고 보내주신 초대장으로 가입했습니다.ㅎ 감사합니다 다시한번..
    저도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도무지 시간도 나지않고 어디서 시작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리고 혹시 핑크위크님은 다른 블로그를 어떻게 찾으시는지..ㅎㅎ
    핑크위크님하고 관심사가 같은지 모든 글들이 다 제 취향이네요 ㅋ
    혹시 추천해주실 블로그는 없으신지..ㅋㅋ

    좋은글 재밌는글 유용한 글 많이 읽고갑니다..ㅎ

    • PinkWink 2010/03/03 23:37

      저도 제가 자주가는 블로그들을 어떻게 찾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뭐 그냥 제 블로그에 댓글따라가셔서 또 인사나눠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ㅎㅎㅎ^^

  • babookao 2010/03/11 19:52

    잼나게 잘읽었습니다..

    우리 윗분들은 세계정세를 못읽은건 지금이나 그때나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뒤통수를 후리네요..-0-

    • PinkWink 2010/03/12 10:39

      뒤통수 아프시겠는데요^^
      잘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mark 2010/03/13 01:51

    한마디로 정쟁때문에 국력이 약화된 때문이지요. 일본 정세를 정탐하러 간 우리측 첩자가 양파간 보고가 다르니... 그런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 정치인들이 지금의 행위를 보면 더 개탄스럽다는 것 아님니까?

    • PinkWink 2010/03/08 15:13

      그 당파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요즘 찾아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와같은 당파의 정쟁이 더 나아가서 그 당파간의 정쟁이 왜 국익에 무익했는지가 요즘 너무 궁금하더군요^^

    • PinkWink 2010/03/09 11:50

      헉... 그..그런 어려운 문제를...
      저..전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ㅜ.ㅜ
      그래도 사실... 몹시 궁금하답니다...ㅎㅎ^^

    • mark 2010/03/13 01:52

      그원인을 찾으시면 여기 올려주세요. 그리고 우리 국민의고질적인 당쟁과 당파를 없애는 제안도 나왔으면 하는데요.

    • mark 2010/03/13 01:52

      논문 쓰신다고 생각하시고 한번 시도해보세요. 잘하면 대박나는 일입니다.

    • PinkWink 2010/03/13 12:19

      ㅎ.. 그러니 더욱 ...ㅜ.ㅜ 논문은 지금도 힘들어요..ㅎㅎㅎ
      근데... 이걸 취미삼아 호기심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조선 초기를 넘어 고려말기로 넘어가는데요...
      어마어마한 분량이군요... 헉^^

    • mark 2010/03/14 01:23

      유 캔 두 잇 (You can do it 이라고 찍으니가 안 올라 가는 군요. 영어 거부 ㅋ)

    • PinkWink 2010/03/14 16:13

      ㅎㅎ 한때 악명높았던.. 스팸대란이후로 그렇게 설정을 바꾸었네요^^

  • ygy2011 2010/04/06 23:06

    조선은 일본이 침략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력을 보강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문제는 그 병력이 수천명 정도였고, 그 외에도 재대로 대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 PinkWink 2010/04/07 11:53

      그렇군요... 자세히 알아보질 못했네요...
      감사합니다.^^

  • dam 2010/04/14 10:30

    내부와 외부 모두 문제가 있었던거져 뭐..ㅎㅎ당시는 조선 중기로써 님 포스팅처럼 내부 문제가 너무 컸기 때문에 자연스레 국력도 약해졌고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고 일본이 아니더래도 어느 누가 툭 건드려도 무너질만큼 약했으니까..... 글구 윗대가리들 정신 못차리는거 조선이던 대한민국이던 진짜 진짜 고질이네요.. 에휴.. 솔직히 일본이 그렇게 쳐들어온건 만만하고 건드려볼만하니까 온거고 그들이 공격을 해오는건 그 당시 시대는 전쟁시대고 힘으로 강이 약을 누르는 시대니까 이해는 합니다만 전쟁에도 매너가 있고 에티켓이랄까 그런게 있는데 그런 것마저 다 없애고 인간적 최후의 양심과 도덕마저 무너뜨리는 만행을 저지른게 xx같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나쁜 놈이라 할 수도 없을것 같네요.. 우리도 힘의 시대에서는 힘이 없으면 공격 당하고 점령당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고 그만큼 헤이해진 것도 잘못이고 부패와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쇠약하게 해서 그런 꺼리를 제공한 것도 울나라도 내외적으로 잘못한거니까.. 그리고 맞춤법 틀리신게 있는데 외곡이 아니라 왜곡인듯요 어제 역사스페셜 다시 본후 임진왜란 검색하다가 들렸습니다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ㅎㅎ

    • PinkWink 2010/04/15 01:37

      감사합니다^^ 댓글에서 분노가 ... ㅎㅎ^^
      그나저나 전 왜 .. 도대체 왜 맞춤법도 틀렸을까요..ㅎㅎ^^

  • sonkho63 2010/04/27 21:07

    우연히 들어와봤는데.. 정말 공들여 하셧더군요?? ^^
    많은 지식 배워갑니다~

  • kimjm1221 2010/05/23 09:52

    역시 윗대가리들 정신 못차리네
    이제는 북한이랑 전쟁한번 나봐야..
    정신차릴껀가..

  • max 2010/07/30 17:45

    음 ...초반에 왜군과 죽기살기로 왜군죽고 조선군도 죽고 다죽으면 그다음에 왜넘들이 퇴각하면.... 그러면 그다음엔 누가 조선을 지키나요? 조선이 북쪽으로 퇴각하고 명을 압박해서 명이 참전케 하기위해 처음에일부러 져준것이 아닐까요? 조선이라는 나라는 생각해보면 볼수록 정말 대단한 나라입니다.

    결론으로 명은 망했지만 조선은 향후300년 멀쩡했습니다.

  • landashy 2010/08/01 16:27

    두번째 이유는 지휘관의 훈련 부재입니다. 우리나라 고대의 지휘관들은 지방의 수령이 곧 군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라시대까지는 지방 군대 지휘관이 지방 행정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군대 지휘관이 지방 행정을 제대로 할리 만무하였고, 결국 평화가 길어지자 지방 행정 능력이 군대 지휘능력보다 중요시 되게 됩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문관이(고려 무신시대조차도 문관이 더 중시되었다.) 무관보다 중요한 입장에 서 있었고, 군학을 전혀 배우지 않은 이러한 문관들이 지방 행정관으로서 파견되게 됩니다. 그래서 이쯤 되면 군사적 능력이 전무한 문관들이 행정을 잘 해나감으로서 명관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문제는 싸움이 벌어지면 바로 이러한 문관이 군대를 이끌어야 합니다.(왜냐면 행정권과 군사권이 구별되지 않으니까) 당연히 질수 밖에 없지요.
    신나게 싸우면 문관이 깨져나가기를 계속.. 결국 중앙 정부에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군학을 좀더 배운 문관이나 아니면 무관이 군대를 지휘할 수 있도록 내려보내는 체제를 구축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제승방략체제 인 것입니다.
    수군이 진관체제를 고수하는 것에 비해서 육군이 제승방략체제라고 하시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지휘관이 무관이거나 아니면 군사적으로 우수한 경험많은 (땅을 관리 안하니까 행정능력이 필요없는) 문관이 배치된 수군에서는 진관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 했을 뿐이고, 땅을 관리해야 하니까 행정업무까지 해야 했던 육군에서는 '불가능'했을 뿐입니다.

    • PinkWink 2010/08/01 16:52

      음.. 조선의 무관 홀대는 많이 들어본것같습니다. 물론 고려도 그렇구요.. 그렇다면 조선의 방위체계 자체가 기습공격에 약했던것 자체가 설명이 되겠군요...
      그러나저러나.. 기나긴 설명을 첨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landashy 2010/08/01 16:29

    음, 진관법에서 제승방략체제가 된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첫째, 진관법을 유지하려면 각 지방마다 병력을 배치해야 하니까 국경선에만 배치하는 것에 비해 모든 지방에서 돈이 듭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세금을 거두어 서울로 보내고, 다시 소요비용을 서울에서 지방으로 보내는 것이 힘들었으니까, 군사비를 자체적으로 거두고 자체적으로 소모했습니다. 그런데 임란이 발발하기 전 100년 전 부터 이미 이러한 비용을 감당해야할 향촌이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부대원이 전혀 없지만 명단만 존재하는 유령부대가 발생하게 되었지요.(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그런데 정부입장에서는 이 유령부대가 실존하는 부대란 말이지요. 그래서 이 부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무기나 비용들을 대주게 됩니다.(지방에서 군사비를 전부 대거나 무기를 제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중앙도 알고 있었던 듯) 그런데 무기랑 비용을 받았지만, 그것을 운용할 부대는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 이 무기랑 비용은 그대로 허공으로 날라가 버리게 됩니다.(혹은 뒷주머니로)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제승방략체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즉, 어차피 유령부대에는 더 이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중앙정부의 포고인 셈이지요.

    • PinkWink 2010/08/01 16:51

      향촌의 붕괴라는 것이 결국 중산층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것인가요?? 결국, 경제적인 이유였고, 좀 더 나아가면, 세금을 내는 백성이 줄어들어 유지하기 힘들었다는 것이기도 한거군요...

  • 생맥주짱 2011/03/06 02:20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역시 천편일률적인 학교교육은 한계가 있네요 나이 서른이 되어도 제 나라 역사조차 잘 모르고 지나간다는 건 창피한 일입니다. 다만 저에게 궁금한 점이 있다면 역사스페셜 언제적 방송이었는지 입니다. 알려주세요 꼭 찾아 보고 싶네요. 좋은 지식 감사합니다.

    • PinkWink 2011/03/07 08:49

      그게.. 저도 구해지는대로 닥치는데로 봐버려서 언제방영했는지는 모른답니다. 또 당시 참고했던 영상은 하드의 용량관계로 지웠거든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