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선배... !  
 

소중한 20살... 전 지금 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놀라겠지만, 극단적으로 말이 없는 신입생이었습니다. 뭐... "예", "아니오" 말고 다른 말을 들은 친구들은 그걸 다음날 자랑처럼 말하기도 하던 그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정말 반강제로 MT에 끌려갑니다. 말하기 싫어하는 애가 MT를 가고 싶었을리가 없지요. 거길 갔는데... 이건 뭐... 얼마나 자금이 부족했길래 이런 장소를 MT 장소로 섭외했을까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압권은 샤워... 샤워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소 한마리 있던 외양간이었거든요... 큭.. 거기에 유일하게 물이 나오더라는.....

저녁밥 먹기 직전 남자들이 단체로 샤워를 하고... 그 다음 여학생들이 또 단체로 샤워를 하고... 그리고 밥을 먹는데... 한 여자 선배가 말합니다.

"XX... 엉덩이 뽀얗던데.... ㅋㅋㅋ"
"XX... 정말 너네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XX에 점이 있더라...? 오~~호호호호호호"


저 선배는 도대체 뭘까? 정체가... 뭘까? 윽.....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뭐 또 그러냐는 듯한 느낌으로 웃기만 합니다... 잉?) 

그렇게 만난 이상한 한 여자 선배... 그녀는 당시 꽤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성인권운동에 각종 데모에서는 빠지지 않는 사람이었지요. 좀 야한 농담을 즐겨해서 그렇지 대화도 꽤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끔 집에서 밥먹다가 TV에 데모한다는 뉴스를 볼때 맨 앞줄에서 화염병 던지고 있는걸 보고는 숟가락 떨어뜨릴뻔한적도 있습니다.ㅜ.ㅜ.
 
뭔가 자기일에 그렇게 열정을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조금씩 보면서 저와 같은 열정이 부럽다고 느끼게 되고 조금씩 친해졌습니다. 당시 이 누님은 지금으로 말하면 팬클럽이라고 말할 수 있는 20살 신입생 남자애들이 무더기로 따라댕기기도 했습니다. 




   그녀와 잠들다... !  
 

그러던 어느날... 이 누님... 알바비 받았다며 크게 한턱 쏘겠다는 삐삐를 받습니다. 불이나게 도착하니 대략 10명쯤.... 벌써 다들 취했네요...^^. 저도 얼른 분위기에 합류하죠... 거의 필름이 끊어지기 직전... (늦게 도착한 제가 이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뭐....) 이 누님 갑자기 간다는 겁니다. 어딜가냐고 물었더니...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야한다는 겁니다. 응? 새벽 2-3시경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대체 왜 간다는 건지 말은 안하고 계속 가야된다고 우깁니다. 그래서 제가 기사도정신을 술김에 발휘해서 따라갑니다. 택시타고....^^

그리고 그 택시안에서 전 결국 정신줄을 놓고..... 의식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는...
 
그리고 눈을 떴습니다. 주위엔 시끄러운 자동차소리로 봐선 분명 아침은 지난것 같기도합니다. 눈을 살포시,.. 아니 무겁게 뜨는데...

 
바로 눈앞에 자고 있는 선배가 보입니다... 크헉~~~~~~~~~~~~

당시만 해도 순진무구 소년이었던 저는... (뭐 지금도 아니라는건 아닙니다만...쿨럭..)

'헉... 어.떻.하.지? ' 
'뭐... 그..럼... 어떻게? 쿨하게 일어나서 안녕? 할까?'
'도... 도망갈까?'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야하나?'
 
별별 생각을 다하다가 결국 일단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에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손으로 몸을 바치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손끝의 감촉이 몹시... 이상한겁니다...

DSJ_9507
DSJ_9507 by titicat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차디찬 보도블럭을 .... 헉... 예... 우리둘은 시내중심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앞... 보도블럭에서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습니다...ㅜ.ㅜ 

이때 누님.. 우아하게... 눈을 뜨더니...

'이제 일어났냐? 넌 도대체 어떻게 된 애가 하늘같은 선배가 술 쳐먹고 맛이 갔으면 집으로 데려다 줘야지... 길바닥에 팽개쳐놨냐? 그리고 시외버스터미널엔 왜 온거냐? 에구... 변태같은 놈....'
'크헉... 그게 어제... 누나가...'
'시끄럽고... 지금 사람이 많다... 조금 더 있다가 일어나자....'
'잉?~~~~~~~~~~~~~~~~~~~~'




   엽기적인 그녀 !  
 

이상한 에피소드를 멏번 경험했더니 거의 절친 수순으로 변해갑니다. 뭐 여전히 전 수업도 잘 안들어가는 전형적인 폐인 신입생의 모습이고, 선배는 여전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투쟁하고 ... 술먹고 아무데서나 뻗는 여전사(?)의 모습이지요.
 
그 분에 관한 일화는 참 많습니다. 데모하던 중에 경찰진압대에 포위당한적이 있었답니. 그리고 대치상태... 그러다 밥먹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누님 진압대의 수장으로 보이는 분에게 이렇게 소리쳤답니다.. 

'밥먹고 합시다.'

그리고, 준비한 김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처럼 진압대도 밥먹었다는 겁니다. 

밥먹던 누님... 김밥들고 진압대로 슬금슬금가더니 순진하게 생긴 전경에게 뭐라 앙마의 속삭임을 했는지... 다시 돌아와서 애들 김밥을 몇개 압수해서는 가져다 주고는 걔네들 식판에 있는 밥을 교환해서 가져왔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 말은...
 
'밥 먹을때 국이 있어야쥐.... 오~~~~~~~~~호호호호호호'
 
이 누님 때문에 의경에 지원한 다른 학교에 다니던 제 친구도 있습니다. 데모대가 강제 해산 당하고 분을 삭히지 못한 누님이 순진하다 못해 멍청에 가까운 친구에게 어디어디 경찰서 문이나 부수자... 고 앙마의 속삭임을 날려서는 데리고 간겁니다... 그 경찰서 앞으로... 그리고는 돌들고 던질려는데 앞에서 담배피던 사람에게 걸립니다. 뭐하러 오신? 그러자 이 누님... 순진한 제 친구를 가르키며... 의경지원은 어떻게 해요? ㅜ.ㅜ




   영원한 이별... !  
 

이상한 이야기만 했지만... 이분은 어떤 일이든 참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군대를 다녀와서 보니.. 이분은 어울리지 않게 학업에 눈을 뜨면서 대학원을 진학하셨더군요. 도서관에서 거의 매일 밤을 새는 모습을 한두번 본게 아닙니다. 그렇게 서로의 일상에 바쁘게 지내다가 삐삐에서 휴대폰으로 시대가 바뀌고... 서로 저절로 연락이 뜸해지고 난 한참후... 위에서 이야기한 멍청함에 가까운 친구와 술한잔 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누나... 죽었어....
 
몰랐습니다. 순간 왜? 라는 질문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들고 있던 술잔도 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술잔을 찾아 눈을 돌리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과로....
 
사람이 과로로... 죽을 수도 있구나... 과로로 길에서 의식을 잃었는데 그대로 깨어나질 못했다고 합니다. 참... 그 누님다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 물었습니다. 장례식은 다녀왔냐고.. 그는 안갔다고 합니다. 장례식만큼은 선배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갈 수가 없었다고...
 
그날.. 밤새도록 우리는 선배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치 아직 살아있는듯... 험담하고... 놀리고... 크게 웃고... 그러다가 그 누님 삐삐로 연락해보았습니다. 아직 동작하는 삐삐...

'술사줄거 아니면 그냥 끊고 술사줄거면 시간과 장소만 잽사게 말해라... 죽고싶지 않으면... 오~~~~~~~~~~~~호호호호호호호' 

라는 그 인트로....  

벌써 10년도 넘었네요... 이제는 그때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후로 저는 여자를 볼때 외모를 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소개팅을 본능적으로 꽤 싫어하는 남자가 되었네요. (뭐 사실 소개팅을 자신있어하는 것도 아니지만...ㅜ.ㅜ) 오히려...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는... 그래서 일하느라 화장도 잘 안하는 사람도 이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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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ite Rain 2009/11/09 08:27

    정말..불꽃같이 살다가...ㅠ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많은 일화가 있었군요. 시외버스 터미날에서의 동침은...정말이지..ㅋㅋ
    저에게도 그런 선배가 있죠. 독일에 계시지만...그 분도 데모를 한다고 하면 텔레비전 뉴스 보도 앞자리를 차지하고 승리의 브이자를 날리곤 하셨죠.
    이번 주도 행복하게 보내세여.

    • PinkWink 2009/11/09 10:37

      그렇죠...
      제가 적은 글 다시 읽어보니... 기억의 회로가 하도 오래전이라 좀 잘못된 부분도 있긴하지만(시간의 순서라든지...) 중요한건.. 그런 소소한건 아니니까요..
      확실히 뭔가에 몰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신분들중 한분이시지요...
      네.. WhiteRain님도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 영웅전쟁 2009/11/09 10:47

    쭉 봐오면서
    참으로 멋진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마지막에 돌아가셨다는 말에 경악을 합니다.
    참으로 안타갑군요....
    그것도 과로로... 명복을 빌어 봅니다.

    • PinkWink 2009/11/09 10:57

      예... 멋진분이었던건 분명합니다...
      장난을 너무 좋아하셨던것을 빼면요...^^

  • 박재욱.VC. 2009/11/09 11:26

    아.. 쭉 스크롤을 내리면서 읽을 때는 훈훈하다가, 감명 깊다가, 살포시 웃기도 했는데..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였네요. 정말 열정적으로 삶을 사신 분 같은데, 그러한 정신을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PinkWink 2009/11/09 11:42

      겨우 잠을 이기지 못하고 신경이 곤두서곤하는 저를 보면
      가끔 이분을 떠올립니다... 정신력...
      그래도 이분은 꽉막힘이라던지 옹고집 등의 이미지보다는
      엽기에 가까운 장난... 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한분이시지요...^^

  • 부스카 2009/11/09 11:47

    여장부셨군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길바닥에서 끌어안고 자본 적은 없군요.
    ㄴ(-_- )ㄱ==333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PinkWink님 멋진 한 주 시작하세요~

    • PinkWink 2009/11/09 12:47

      그러게 말입니다...
      길바닥에서.. 그 무슨 추태인지...크~~~~

  • 아이미슈 2009/11/09 12:25

    웬지 모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그래도 그분은 행복했었을듯해요..
    그렇게 좋은 기억을 가슴에 품는분이 계시니..
    누군가에게 저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이 될런지요..

    • PinkWink 2009/11/09 12:48

      그렇죠? 저도 또 누군가에게 이와같은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하고 바랍니다... ^^

  • 바람처럼~ 2009/11/09 13:42

    아~ 처음에는 너무 재밌는 추억인가 보다 하고 읽었는데....
    그렇군요
    아무튼 너무 멋진 분이셨을거 같네요
    밥먹고 합시다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 PinkWink 2009/11/09 13:57

      밥먹고합시다는...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참 그분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지요...^^

  • joniss 2009/11/09 16:15

    기운차게 자기일을 해내는 사람은 참 멋진 것 같아요 !
    더군다나, 여성이라는 한계를 짓기 보단,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다하는 분이라니!
    이런 분을 가까이에서 보셨다니, 부러운 경험이예요 !

    저도 피곤하다고 헤롱헤롱하지 말고 하고있는 일에 마음을 집중해야 겠어요 ^^
    집중력 ! 핑크윙크님도 배부르고 기운찬 월요일 되세요 ^^*

    • PinkWink 2009/11/09 16:39

      응? 난 항상 배불러있어...
      배는 불러있는데... 왜 동시에 배가 고픈걸까... 쩝....

  • 탐진강 2009/11/09 17:35

    멋진 선배였군요.
    정말 불꽃처럼 살다가 가신 선배네요.
    이야기가 재밌다가 슬프게 끝나는군요..

    • PinkWink 2009/11/10 02:22

      좀더 많은 에피소드가 있는데...
      뭔가.. 기억이 꼬였는지.. 생각이 잘 안나요....^^

  • boramina 2009/11/09 23:45

    지금 그 분은 무얼 하고 계실까, 궁금해하며 읽어내려왔는데 이 세상에 안 계시다니 안타까워요..

    그래도 짧은 시간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가셨을 것 같네요.

    • PinkWink 2009/11/10 02:23

      그렇겠죠...^^ 아마 거기서도... 술먹고
      순진무구한 영혼에게 앙마의속삭임을 날리고 있을거라는...

  • 라라윈 2009/11/10 03:47

    엽기적인 그녀의 주인공보다
    강렬하고 매력적인 분이신데요....
    돌아가지 않으셨으면 더 많은 추억을 선사해주셨을 것 같은데..
    짧은 생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 PinkWink 2009/11/10 03:56

      어쩌면... 그분의 에피소드로 누군간 책을 출판했을지도 모르죠...^^

      무거운 느낌으로 적을려고 했던글은 아닌데..
      적고보니... 결론은 역시 무겁게 나타나네요...ㅜ.ㅜ

      그래도 분명... 하늘나라같은것이 있다면...
      그쪽 행정담당도 꽤나 피곤할겁니다.....^^

  • casablanca 2009/11/10 05:18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한시대를 풍미하신것 같은 분이시군요.
    뭔가에 몰두하고 열정을 바치는것이야 말로 하루를 살아도 의미가 있을것 같습니다.
    그분의 명복을 빕니다.

    • PinkWink 2009/11/10 06:02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전 무심한 후배였던 모양입니다.
      대충 11월쯤이라는 것은 아닌데
      기일이 정확하게 언제인지가 기억나질 않네요...ㅜ.ㅜ
      그래도.. 제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 아고라 2009/11/10 07:25

    아...저도 처음에는 왠 엽기적인 일화? 했는데 읽으면서 점차 가슴이 찡-해지더군요. 그렇게 인생을 드라마처럼 사는 분들이, 정말이지 간혹 있습니다. 한순간 지나치게되더라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분들이지요. 저또한 그분의 명복을 빕니다.

    • PinkWink 2009/11/10 08:06

      네... 저도... 음음.. 저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감흥을 주는 삶을...ㅜ.ㅜ

  • 2009/11/12 01:44

    비밀댓글입니다

    • PinkWink 2009/11/12 03:55

      네.. 감사합니다. 반쪽은 잘 모르겠지만^^... 열정이라는 단어는 가슴에 남겨두어야죠^^

  • 바다애미 2009/11/16 13:51

    참... 멋진 분이네요...

  • Surr 2010/02/12 03:14

    지은선배 얘기군아...

    나 참 이뻐하셨었는데..ㅠ_ㅠ

    • PinkWink 2010/02/12 09:43

      응? 시..실명을....ㅜ.ㅜ
      그렇네 그러고보니 너랑도 학교생활이 겹치는 분이구나...
      헉? 너..너무.. 나이가 많다....ㅜ.ㅜ

  • 삼대닷 2010/02/20 10:29

    글을 읽으면서 참 열정적인 분이시구나 하고
    닮아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안타깝네요 ㅜ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PinkWink 2010/02/20 16:02

      감사합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라 좋은 추억만 남는것같아요

  • 가우 2013/02/05 21:27

    뭉클했던 영화가 몇편 있는데...
    못지 않네요.....